밝은 창
이른바 '외신'이라는 것과 조선일보 본문
우리나라에서는 외국 언론의 보도나 기사 즉 ‘외신’ 이라고 하면
국내 언론의 보도나 기사보다 더 신뢰를 하는 분위기가 있어왔다.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그런 면은 더 심할 것이다.
어떤 이는 ‘외신’이라면 무조건 맹신부터 하고 본다.
왜 그럴까?
그렇게 된 이유가 뭘까?
그건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 언론은 믿음이 덜 가서...’가 아닐까?
우리는 오랫동안 독재정권의 언론 통제를 경험했다.
그들의 직간접적인 통제 때문에,
국내 언론의 보도나 기사는 늘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떤 의도를 가진 보도나 기사도 많았다.
그러는 와중에 일부 언론은 독재 정권과 결탁하여 여론을 호도하기도 했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작의적인 보도를 일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뜻있는 사람들은 외국의 언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외국 언론의 보도나 기사가 국내보다 훨씬 더 객관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사실에 더 부합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그런 내용을 국내로 나르기 시작했다.
엄혹한 시기라서 참 쉽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워낙 국내에 알려진 내용들이 사실과 다른 게 많아서,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을 터.
어쨌든 그들의 수고 덕분에 그런 사실들이 하나 둘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소수의 사람들만 그런 정보를 알고 있었지만,
머지않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나중엔 거의 대다수 사람들도 (비록 시차는 있지만)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외신’이 더 신뢰받게 된 배경엔,
이와 같이 국내의 독재 정치와 또 그 세력과 결탁한 언론에 의해 저질러진 어두운 그림자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웃기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그렇게 외신이 더 신뢰받게 만드는 데 가장 기여한 언론사,
즉 독재 세력과 결탁하여 작의적인 보도를 일삼던 언론사가,
이번엔 오히려 ‘외신’이라는 단어를 앞세우며
‘외신’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신뢰감’을 이용하여 독자들을 현혹시킨 것이다.
진짜 웃기지 않는가.
자신들의 행위 때문에 외신을 더 신뢰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그 뒤에 숨어서 야옹거리고 앉았으니...
그나마 제대로 된 ‘외신’을 인용했다면 또 모르겠으나,
외신 같지도 않은 걸 가지고 말이다.
암튼 하는 짓마다 참 대단하다.
그런 잔머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계속 나오는 건지...
돌려 말할 필요 없이, 바로 조선일보 얘기다.
조선일보가 최근에 ‘외신’이라고 하며 블룸버그 통신 기사를 인용했는데,
그건 알려졌다시피 ‘검은 머리 외국인이 국내에서 만든 것’이다.
한국인 출신 ‘블룸버그 통신 한국 리포터’가 국내에서 작성하여 블룸버그 본사로 보내어 게재가 된 거다.
글의 내용 또한 지극히 ‘자의적’ 이다.
‘외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객관적인 게 아니라, 한국인 중의 한명이 자신의 정치적인 성향을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블룸버그’라는 껍데기를 쓰고 있으니 주목의 대상이 된 모양이다.
알려졌다시피 블룸버그 통신은 경제적인 것을 주로 다루는 경제지다.
나는 이곳에 정치적인 기사도 있다는 걸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블룸버그 통신 데스크가 그런 허접한 글을 제대로 모니터링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 이면에는, 바로 이런 점, 즉 자신들의 주된 메뉴가 아니라는 점이 작용한 게 아닐까?
그걸 쓴 이유경이라는 ‘블룸버그 통신 한국 리포터’는 전문 분야가 IT와 비즈니스 쪽인 걸로 알고 있다.
연합뉴스에 근무하다가 블룸버그 통신으로 옮겼다는데,
경제 전문지인 블룸버그에서 그를 채용(또는 계약)한 것은, 그동안 그녀가 취급했던 IT와 비즈니스 분야의 취재경력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녀가 블룸버그 통신으로 옮긴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문제의 글을 쓴 거란다.
자신의 전문 분야도 아닌 정치적인 내용의 글을.
그 당시에 세계 유력 언론들은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우호적인 내용도 많았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문제의 그 글만 쏙 끄집어내서 활용했다.
그것도 그냥 대충 인용한 게 아니다.
일면 톱, 사설 등을 이용해서 최대한 부각시켰다.
앞머리에 [외신].. 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하긴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이른바 ‘외신’을 발견했으니 그냥 있을 수 있나.
그 ‘외신이라는 단어가 주는 신뢰감’을 최대한 이용하여 희희낙락해야지.
...................
말문이 막힌다.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그들의 그런 야비한 행위가 그동안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PS,
나는 조선일보에서 그런 식의 보도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었다.
구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국회의원 같지도 않은 자가 국회에서 그걸 인용하여 시끄럽기에 덩달아 알게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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