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창
방송에서 어린이에게 '남자친구', '여자친구' 물어보는 거 - 문제 있다. 본문
예전에 중국어를 배운 적이 있다.
중국과 한국이 정식으로 수교를 맺은 바로 다음 해에 회사 일로 중국에 출장을 갔었는데,
서로 언어 장벽이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었다.
그때 중국어를 배우면서 약간의 문화적 차이를 느낄 수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남자친구' 와 '여자친구' 에 대한 것이었다.
그 당시까지
우리나라에서 남녀 간의 사이를 나타내는 용어는 '친구'와 '애인'이 있었는데,
서로 알고 지내는 정도면 친구라고 하고,
서로 사귀면 애인이라고 했었다.
그러니까 우리 기준으로는 '남자친구' 나 '여자친구'라고 하면 그냥 친구일 뿐이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애인을 가리키는 용어란다.
그래서 서로 다르다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지 우리나라에서 개념이 바뀌고 말았다.
그동안 ( 약 20년 사이에 ) 변화가 생긴 것이다.
누가 바꾸자고 한 것도 아닐 텐데,
어느 사이에 '남자친구' '여자친구'는 예전의 '애인' 개념이 되어 버렸다.
처음에는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아서 바뀌기 시작했을 거 같다.
애인이라고 하자니 왠지 쑥스러운데 잘되었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다가 각종 드라마나 예능 프로 같은 곳에서 그렇게 호칭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인식에 변화를 준 면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제는 '남자친구' 나 '여자친구'를 언급하면 자동적으로 '애인관계'를 얘기하는 걸로 인식하는 듯하다.
(이런 현상을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문화적으로 동화되는 거 같아서 기분이 별로 좋지는 못하다.)
그런데 최근에 텔레비전 방송에서
사회자나 출연자가 어린아이들에게 '남자친구' 또는 '여자친구'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거 잘못 된 거 아닌가?
예전의 개념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개념으로는 애인관계를 물어보는 건데, 아이들에게 그게 맞는 질문인가?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정도의 출연자들에게 '남자친구'나 '여자친구'의 유무를 물어보거나,
대답을 듣고 나서 재미로 놀리는 듯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못하는 거다.
심지어는 그 아이가 그냥 친구사이일 뿐이라고 답하면,
야릇한 미소를 보내며 놀리기도 한다.
그냥 친구사이라는데 '에이~' 이러면서 야릇한 미소를 보내는 건 도대체 무슨 뜻인가?
아이가 당황하거나 얼굴 빨개지는 걸 포착해서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그랬겠지만, 분명히 잘 못하는 거다.
아이들에게 그게 가당키나 한 행위인가?
그런 질문이나 반응들이 그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준다는 명분이면 한 아이의 인격형성 같은 것은 아예 무시해도 되나?
더군다나
비슷한 또래 애들에게 미칠 영향은 생각이나 해 보았나?
지금은 무엇이든 초고속으로 전파가 되는 시대다.
그리고 성인문화를 받아들이는 연령대도 자꾸 낮아지고 있다.
따라서 그런 장면들이 자꾸 나오면, 천진난만하게 놀아야 할 아이들조차 이상한 생각들을 하게 되어 있다.
즉 우리나라 전체 아이들의 인격형성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거다.
그래서 그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너무 안타깝다.
질문을 던진 사회자나 출연자도 그렇지만, 그런 장면을 그냥 내보내는 방송국의 무신경에 화가 날 정도다.
방송의 영향력이 날로 증대되고 있는 이 시대에 너무나도 무책임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관계자들의 각성을 바란다.
'단상 ; 언론에 관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나라에도 비영리 독립 언론이 있다니.... 반갑다. (0) | 2013.06.09 |
---|---|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바로 그 나라 언론의 수준이다. (0) | 2013.04.05 |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0) | 2012.12.27 |
로스쿨 제도의 도입 취지에 맞는 첫걸음 소식, 반갑다. (0) | 2012.11.21 |
어린이 성폭행 사건 언론 보도에 한마디... (0) | 2012.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