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창
정보는 비교해보는 습관이 좋다 본문
최근에 본 구절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다.
'어리석은 자는 확신을 잘하고, 지혜로운 자는 의문을 잘 품는다.' 라는 내용이다.
맞는 얘기 같다.
어리석은 자는 누구로부터 한 두 마디를 듣거나 또는 매스컴 등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자기 것으로 곧잘 만든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것을 확신으로 가공하여 입에 침을 튀겨가며 주장한다.
마치 자기가 직접 보고 들은 거 같이.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이 올바른 내용인지 왜곡된 부분은 없는지부터 살핀다.
또는 다른 시각으로 볼 수는 없는지 등도 살핀다.
특히 과거에 왜곡된 정보에 속았던 적이 있거나, 어느 한편의 시각으로만 바라본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가 허탈했던 기억이 있는 경우엔 더 조심스럽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혜롭지 못하다.
물론 지혜롭지 못하다고 모두 다 어리석다는 표현을 쓸 수는 없지만, 대부분 쉽게 확신을 잘 하는 것만큼은 현실인 거 같다.
왜곡된 정보에 속았으면서도 그걸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그냥 확신으로 굳어져버린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떠도는 정보는 대부분 그것을 만들거나 가공한 사람들에 의해 규정되어 진다.
그러다보니 본래의 모습을 잃고 엉뚱한 형태로 변하는 경우가 왕왕 있게 마련이다.
때로는 심하게 왜곡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그것을 보거나 듣자마자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심각한 것은 바로 언론과 종교에서 나오는 정보라고 본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왜곡은 관계되는 몇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말지만, 언론과 종교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수많은 사람들을 확신 속에 사로잡히게 만들어,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언론인과 종교인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그들이 말하거나 쓰는 글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는 언행은 사람들이 보통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확신으로 변한다.
나아가서 수많은 사람들의 일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가리키는 방향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향한다.
그리고 그 방향이 맞다는 확신을 한다.
만약에 그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래도 사람들은 모른다.
당장 자신에게 피해가 없으면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언론과 종교에서 나오는 정보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대로 수용한다.
누가 잘못 인도하고 있는지, 누가 사실을 비틀어 얘기하고 있는지 따지려 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것도 그냥 원론적인 수준으로 촉구할 수밖에 없다.
그네들의 양심에 관계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기본 양식 자체에 문제가 있을 때는 그것 조차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냥 그 방향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언론과 종교에서 나오는 정보의 무서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로 좋은 면만 본다.
어차피 세상사 어느 것이든 해석하기 나름 아닌가.
그래서 언론과 종교는 계속해서 영향력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만약 당신이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는데, 당신이 그걸 알거나 느끼지 못할 때는 기꺼이 거기로 갈 용의가 있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할까?
아마 모두다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면 궁금해 할 것이다.
따라서 그거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언론에서 정보를 접할 때는 최소한 두 가지 다른 시각을 보자.
좀 더 쉽게 예를 하나 들자면, 신문을 볼 때 보수 쪽 신문과 진보 쪽 신문을 같이 구독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같은 사건에 대한 보도가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살펴보는 거다.
때로는 아주 다른 보도 내용에 놀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이슈에 대해 어떻게 다르게 얘기하는지에 대해서도 비교해 본다.
그래야 어느 한 쪽의 시각에 고정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정 반대의 논조가 있어서 재미있기도 하다.
그걸 보면 어느 한쪽의 얘기만 듣거나 신문을 보고 흥분했던 과거의 자기 모습에 스스로 겸연쩍어지기도 할 것이다.
언론은 이렇게만 해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종교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믿음이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하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 거 같다.
핵심 교리에 대한 믿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견해 같은 거라든가, 교리에서 파생된 것을 언급하는 경우를 말하는 거니까 종교적인 믿음의 근본 바탕과는 다르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어느 한 사람의 말을 맹신하지 말자." 고.
다른 종교를 바라보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그 종교 안에서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말하는 종교인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같은 종교의 같은 종파 안에서도 앞에서 이끄는 사람들의 말이나 방향이 조금씩은 다를 수 있다.
그것도 같이 들어보고 판단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겠다는 거다.
그래야 믿음이 오히려 더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종교적인 믿음조차 너무 맹신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하물며 그곳에서 종사하는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맹신해서야 되겠는가?
'단상 ; 언론에 관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림픽과 언론 (0) | 2012.08.10 |
---|---|
비영리 언론을 기다리며 (0) | 2011.09.09 |
수도권 집중에 대한 한 신문사의 견해 (0) | 2011.08.16 |
언론에게도 견제가 필요하다 (0) | 2011.08.06 |
아침 단상 (0) | 2011.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