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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코린토스/ 코린트 (Corinth)

밝은 창 2017. 8. 21. 09:01

 

그리스에서의 첫 여정은 코린토스(코린트) 투어로 정했다.

보통 아테네부터 둘러보는 게 순서겠지만,

현지 여행사와 접촉하다보니 일정상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알다시피 그리스의 유적들은 기둥 몇 개와 잔해들만 뒹굴고 있는 폐허에 가까운 곳이 많다.

따라서 그곳에 담긴 의미나 배경 등을 모르면 기껏 가봤자 거의 헛수고다.

실망만 안고 돌아오기 쉽다.

그래서 현지에서 일일 투어를 진행하는 여행사의 가이드를 받기로 한 것이다.

 


코린토스(코린트) 투어는 운하부터 시작되었다.

그곳을 건너야 펠로폰네소스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운하 위의 저 다리는 코린토스 운하를 상징하는 다리로 각인될 거 같다.

사람들이 운하의 사진을 주로 찍는 장소와 가깝게 위치해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진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기차가 다니는 철교라는데, 지금은 폐쇄되었다는 말도 있다고..

당겨서 보니, 좀 낡아 보이긴 했다.

 

 그래서 자료 사진을 찾아 보았다. ㅎ



 

운하의 길이는 약 6,34 킬로미터, 폭은 약 24미터 정도란다.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와 더불어 세계 3대 운하라고 한다는데,

나머지 두 운하에 비하자면 그 규모가 보잘 것 없다.

어쨌든 이 운하가 완공되면서 에게해와 이오니아해 사이의 항로가 320킬로미터 정도 단축되었단다.

 

처음에 로마의 황제 네로가 약 6천명의 유대인 포로들을 동원하여 공사에 착수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그 이후로도 몇 번 공사를 재개했으나 실패를 거듭했단다.

그러다가 1893년에 프랑스 자본의 민간 회사에서 10여년의 공사 끝에 완공하였다고...


운하의 양쪽 파인 면을 보니, 쉽지 않은 공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하를 잠깐 구경하고 고대 코린토스 유적지로 향했다.

사진에서 기둥 몇 개 세워져있는 곳이 아폴론 신전

 

 

 

 

 


사진에서 보다시피,

유적지 전체적으로 거의 폐허 수준에 가깝다.

비잔틴 시기에 일어났던 큰 지진으로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졌는데, 그 이후에 복구를 하지 않았단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진에 있는 기둥 몇개 남아있는 '아폴론 신전'이

그 당시의 건물 형태를 가늠해볼 수 있거의 유일한 유물이다.

 

 

피레네 샘


그리스의 도시는 대부분 강수량이 적고 강이 거의 없어서 수자원 확보가 어렵다.

그래서 물이 나오는 샘이 없다면 도시 자체가 형성되기 힘들다.

 

고대 코린토스 유적지에 있는 이 피레네 샘은

이 도시의 건설자인 시지포스가 강의 신 아소포스에게 딸을 납치한 제우스의 행방을 알려주는 대가로 얻었단다.

하지만 제우스가 이 사실을 알고 시지포스에게 끊임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가혹한 형벌을 내리게 되었다.


물론 그일이 있기 이전부터 이미 시지포스는 제우스에게 찍힌 존재이긴 했다.

제우스를 교묘하게 속이는 짓을 하여 화나게 했기 때문이다.

 

 

 

아크로코린토스

 

그리스인들은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을 '아크로'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곳에 신전을 지었다.

높은 곳은 신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크로코린토스를 자세히 봐도,

신전 같은 건 보이지 않고, 산 정상에 성채 같은 것만 보인다.

예전에 베네치아인들이 이곳을 지배했을 당시 쌓은 성이란다.

 

베네치아인들은 비잔틴 제국 당시에 (그들의 상업적인 수완으로) 독자적인 권한을 부여받아

지중해 곳곳을 사실상 지배했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곳곳에서 그들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성채가 자리하고 있는 바로 그곳에,

고대 코린토스 시대에는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단다.

 

아프로디테는 뱃사람들의 수호신.

따라서 연안 도시였던 코린토스에 그 신전은 안성마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도시가 타락하면서 신전도 같이 몰락하고 만다.

신전에는 수많은 여사제와 신도가 있었는데,

나중에 코린토스가 사치와 향락의 도시로 변했을 때, 그들이 매춘부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고대 코린토스 유적지의 대부분은 로마시대의 것이란다.

그리스가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철저히 파괴되어 로마시대에 재건된 거라고...

 

코린토스는 그 당시,

에게해와 면한 아시아 쪽에서 로마로 가기위해 사람과 문물이 모여드는 국제적 도시로 성장했다.

도시는 부유했고 사람들로 넘쳐났으며,

그리스인, 로마인, 소아시아인, 유대인 등이 한데 섞여 살고 있었다.


이런 제반 여건 때문에,

바울은 이곳에서 전도에 성공하여 초기 교회를 세울 수 있게 된다.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 하나가 바로 이 코린토스에서 이루어진 거다.

 

바울은 코린토스에 오기 전에 아테네에서 먼저 전도를 시도했단다.

그러나 실패했다.

그리스는 수많은 신과 영웅의 서사시가 넘쳐나는 다신교 사회였다.


따라서 유일신을 주장하는 바울의 아테네 전도 실패는

충분히 예견된 거라고 봐야 한다.

 

아테네에서의 실패 후,

바울은 자연스레 코린토스로 향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으로 유명했으니,

당연한 수순 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코린토스는 국제적인 도시라서 다양한 인종과 생각들이 어우러졌으며,

전통적으로 신층종교에 호의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상인계층이 많았다.

상인계층은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관계로 

신흥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며,

오히려 새로운 종교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키우기를 원하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배경들이

바울의 전도 성공을 도왔으며,

교회를 세울 수있게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미 그곳에서 살고 있던 많은 유대인들 때문에 유일신 사상이 전혀 낯설지 않았던 것도

그가 전도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의 하나라고 판단된다.

 

 

 

코린토스에서 교회 설립에 성공한 바울은 다른 도시로 전도를 떠났는데,

도시 전체가 점점 사치와 향락을 탐닉하

자신이 설립한 교회 내부에서도 분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서신을 써서 보낸다.

그게 바로 신약에 있는 고린도전서고린도후서.

 

자신의 편지가 나중에 경전이 되어 수많은 인류가 보게 될 줄을

과연 바울은 상상이나 했을까? ㅎ

 


 

이곳이 바울이 처음 설교를 한 장소란다.

물론 추정일 뿐이고,

확실한 증거가 있을 순 없다.

 

 

이 유물은 기독교가 번성할 당시에 만들어진 게 아닐까..  추측된다.

 


 

옥타비아 신전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누이를 위한 신전인데,

화려한 코린트식 기둥이 돋보인다.

(코린트식 기둥은 기둥 윗부분을 아칸서스 잎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게 특징이다)

 


 

코린토스 박물관


유적지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소규모 박물관인데,

거기에 있는 유물들 보다는

이곳에 들렀을 때,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어서 우선 좋았다. ㅎ

 

 

 


그리스 유물들을 보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조각상의 대부분이 이렇게 목을 상실했다는 거다.

아니면 얼굴에 흠집을 입거나...

이곳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는 오랫동안 이민족들의 지배를 받았는데,

그때, 그리스인들의 기를 꺽고자 석상의 목을 없애버리거나

얼굴에 흠집을 냈다고 한다.

 

 

 

유적지 관람을 끝내고, 다시 운하로 왔다.

운하의 입구 쪽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곳에 잠수교가 있다.

이렇게 배가 지나가고 나면,

물밑으로 내려갔던 다리가 서서히 올라 온다.

 

 

 

 


다 올라오면,

사람도 건너고, 차량도 건넌다. ㅎ

 

 


다 올라온 다리 중간 쯤으로 가서

운하 안쪽을 향해 사진 한장 찰칵.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