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창
호박 고구마를 먹으며 본문
호박 고구마를 먹다보니 맛좋은 것이 있고 상대적으로 맛이 떨어지는 것도 있었다.
어느 날 두 개가 남았는데 마침 두 가지가 한 개씩 남게 되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어느 것부터 먹을 거냐고 물어봤더니 망설이지도 않고 맛있는 것부터 먹는단다.
그러면서 그 이유도 댄다.
이른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맛있는 것부터 먹어야 그 맛을 제대로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간단한 것에 대해 나는 오랫동안 고민 아닌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주로 아들과 반대의 결정을 해왔었다.
나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모르지 않고, 맛있는 것부터 먹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최종 선택은 거의 반대로 하고 말았다.
맛있는 것을 아껴 먹고, 나중에 먹으면서 그 맛을 오래도록 음미하고 싶다는 욕구가 더 컸기 때문이었다.
그런 결정이 후회될 때도 많았지만 고치지 못했다.
특히 내 나름대로 아껴 먹으려고 남겨두었는데 남들이 그걸 보고는 나누어 먹자고 할 때나, 심지어는 내 것을 뺏어먹을 때는 나의 바보 같은 선택을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또 선택의 시간이 오면 갈등을 하다가 역시 같은 선택을 했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바보 같다는 것을 알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의 경험이 나의 내면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거 같다.
나의 어린 시절은 모든 것이 부족하던 때였다.
그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 집은 평균이하의 가난한 생활형편 이었다.
끼니를 걱정할 정도였던 그때, 어쩌다 얻어걸리는 색다른 먹을거리는 그야말로 행운이었지.
그러니 도저히 금방 먹어치울 수가 없었다.
아껴서 오래도록 음미해야 했다.
그리고 맨 나중에 맛있는 것을 먹고 나서 그 맛을 오래도록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서 고깃국을 먹을 때는 고기 덩어리를 맨 나중에까지 남겨서 식사가 끝난 뒤에 입안에 넣고는 오물 오물거리며 그 맛을 오래도록 음미하며 행복해 했다.
떡이나 과일 그리고 과자 같은 것은 몰래 숨겨두고 조금씩 아껴먹었지.
그러다가 상하거나 변질되어서 못 먹게 되는 일도 많았다.
웃기는 것은, 맛없는 거부터 먹으며 아끼다가 정작 맛있는 것은 상해서 먹지 못하게 되는 일이 잦았다는 거다.
그래서 속상한 마음에 울기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하고도 그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되면 역시 맛있는 거부터 선뜻 집어지지 않았다.
맛있는 것을 먼저 먹어버리면 너무 일찍 사라져버려서 아쉽기 때문이다.
맛있는 것을 보면서 맛있게 먹을 상상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설사 나중에 못 먹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아직 맛볼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것이 남아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그 자체가 좋았던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어렸을 때의 경험이 평생을 지배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의식의 핵심에 자리 잡고서 계속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 이후에 지식이나 경험을 통해서 습득하는 것은 핵심으로 가지 못하고 주변에 머무는 듯한 느낌이다.
머리로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데도 결정적인 영향력에서는 뒤처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 지금까지와 같은 선택을 할 거 같다 ~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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