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창
동물사랑 ? 본문
텔레비전 방송에서 개에게 똥을 먹인 40대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모양이다.
홀로 산속에서 천막을 치고 생활하며 어미 개 한 마리와 강아지 네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재래식 화장실에서 남자가 변을 보면 거기에 사는 개들이 다 먹어치운다는 거다.
마치 예전에 제주도에서 똥 돼지라고 지칭된 돼지 사육방법을 연상케 한다.
요즘 세태에 비추어보자면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다.
그러다보니 후폭풍도 있는 거 같다.
그 방송이 나온 뒤에 '동물사랑 실천협회'가 나서서 동물 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단다.
현재의 동물 보호법으로는 개에게 인분을 먹이는 것이 처벌대상이 되질 않으니 법을 개정해서 인분을 먹이는 것도 처벌해야한다는 거다.
그리고 해당 방송 홈페이지에는 항의가 빗발친 모양이다.
그 사람들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애완견을 가족으로 생각하며 같이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경악을 금치 못할 방송내용 이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과거에는 개들이 사람 똥을 잘 먹었다느니, 대부분의 개들이 그래서 똥개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등의 얘기를 해봐야 별 소용없을 것이다.
그건 옛날에 먹을 거 귀할 때 이야기인데 지금 그런 얘기 하면 되냐고 하겠지.
그리고 똥개라고 하는 것도 인간이 붙인 이름이지, 원래부터 개가 똥을 먹고 싶어 먹었겠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따지고 들면 누구도 자신 있게 반박할 사람은 없을 거 같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누가 실험을 해봤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을 거 아닌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고개가 갸웃해진다.
동물사랑 실천협회라는 이름부터 그렇다.
동물을 사랑한다면 그 협회 사람들은 전부 철저한 채식주의자란 말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분명히 고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
그렇다면 웃기는 거 아닌가.
죽여서 먹는 건 괜찮고, 인분 주는 것은 지탄을 받아야 한다는 거니까 말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먹이사슬을 들먹이며 인간이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으니 고기를 먹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그것과 이것을 섞어 얘기하지 말라고.
그 말에 일단은 수긍한다.
자연의 법칙에 위배된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도 고기를 먹고 있으니 고기 먹는 것을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되묻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 대부분의 소, 돼지, 닭 등이 어떻게 사육되는지 아느냐고.
우리가 즐겨 먹고 있는 고기, 우유, 계란 등을 공급하기 위해서 농장에서 사육되는 그 동물들의 실상을 알고 있느냐고 묻고 싶은 거다.
그 실상은 생각보다 심한 것이 현실이다.
완전히 인간의 이익을 우선시해서 모든 것이 진행된다.
더 많은 고기, 더 맛있는 고기, 더 많은 우유, 더 많은 계란 등을 위해 품종의 개량은 물론이고,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기관을 제거한다든지 하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사육환경 또한 철저히 이익을 더 많이 남기는 것을 선택한다.
쉽게 얘기해서 동물을 기계취급 하는 것이다.
닭을 예를 들어 보자.
닭은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꽉 짜여 진 철장에 갇혀서 산다.
고개를 내밀어서 사료를 먹을 수 있게만 허용된다.
사료를 먹고 계란을 낳는 일만 하라는 거다.
바로 옆에 있는 닭과 사료를 먹을 때 싸워서 다치는 경우도 있어서, 부리 끝부분을 사료 먹는 데 지장 없을 정도까지 자른다.
그리고 밤에도 불을 밝혀서 잠을 덜 자게 하여 계란 낳는 숫자를 늘린다.
그렇게 단 한 번도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사료 먹고 계란만 낳다가,
계란 낳는 숫자가 줄어들면 도계장으로 보내져서 닭고기로 팔려가는 것이다.
물론 자연적인 환경에서 사육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매우 드물고, 대부분은 이렇게 잔인하다고 할 정도의 방법으로 사육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진짜 ‘동물사랑’ 이라는 구호를 내걸려면 이런 것도 개선하라고 목소리를 높여야하지 않느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나중에 식용으로 하더라도 살아있는 동안은 자연적인 환경에서 사육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거지.
그리고 웃기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개 먹이는 사료를 들여다보니 그 성분에 닭고기, 양고기, 소고기 등이 있다는 거다.
좀 전에 얘기했듯이 잔인하게 사육되다가 나중에는 그렇게 개의 먹이로도 된다는 거지.
그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개가 사랑스러우니까 그런 것쯤은 눈감아도 되나?
개나 소나 닭이나 모두 생명을 가진 생명체다.
어느 것이 더 소중하고 더 대접받아야 하는지 정해진 것은 없다.
개가 사람에게 충성을 다하고 외로움을 덜어주기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나 닭도 방법만 다를 뿐이지 인간에게 충성을 다한다.
지금이야 소의 활용도가 적어졌지만 과거에는 소의 역할이 얼마나 컸었나.
그리고 사람들의 소중한 단백질 공급원 역할을 계속 해오지 않았던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해서 짚고 넘어가자면, 지금 하는 얘기가 개에게 인분 주는 것을 옹호하는 거는 절대로 아니라는 거다.
그것은 어렸을 때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란 내가 생각해봐도 혐오스럽다.
그리고 나도 개를 싫어하지 않는다.
지금은 기르지 않고 있지만, 과거에는 집에서 개를 몇 번 키우기도 했다.
그때는 사료가 일반화되기 전이어서 개가 먹는 음식은 집에서 정성껏 만들어 주곤 했었다.
틈나는 대로 같이 달리고 씨름하기도 했다.
그래서 개와 정이 든다는 것의 의미도 잘 안다.
다만 지금처럼 집안에서 같이 생활하는 형식은 아니었고, 개는 마당에 있는 개집에서 생활을 했었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개입장에서는, 그때가 지금보다 더 대접을 잘 받은 시절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얘기가 길어질 수 있으니 생략하겠지만, 관련된 이야기 하나는 하고 싶다.
애완견 기르는 사람들 중에는 커다란 착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꽤 있는 거 같은데,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틈만 나면 강아지 사랑을 들먹이는 그들이 저지르는 행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처구니없는 짓이 많다.
꼬리를 자른다든지, 털을 밀어버린다든지 하는 것도 있고, 심지어는 성대를 자르고 생식기능까지 거세를 하기도 한다.
개 입장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순전히 자기 기호에 맞게 개를 개조하는 것이다.
이게 개를 사랑하는 건가?
학대도 이런 학대가 없다.
어찌 보면 인분 먹이는 것보다 천배 만 배는 더 학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는 고급 옷을 입힌다든지 비싼 사료를 먹인다든지 하는 것을 무슨 대단한 사랑을 베푸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리고 개에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향수를 뿌려댄다.
그렇게 하면 개도 좋아하는 줄 안다.
그야말로 한심한 수준이다.
개에게 향수를 뿌리는 것은 고문을 하는 거와 같을 것이다.
알다시피 개의 후각은 인간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해있기 때문이다.
이 이외에도 예를 들려면 많지만 이정도로 끝내겠다.
동물사랑?
동물 보호법?
좋다.
하려면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한번 해보자.
생각해보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매우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걸 다 헤아려서 법에 반영할 것은 반영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캠페인을 해서라도 바꾸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래야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한두 가지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즉석 대응하고 마는 형식이라면 웃기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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