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아침에 욕실에서 샤워를 하던 중
문득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으드득 추운 날
다른 곳이 아닌 집안에서
맘 놓고 온수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고 감사한 일인가.
얘들아
너흰 이런 기분 모르지?
집안 내에 욕실이 있는 것은 당연한 거고
온수가 나오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건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거야.
그치?
그래.
그 생각이 맞다.
너흰 그렇게 보고 자랐고,
또 그런 것 때문에 불편했던 경험이 없었으니까.
추운 겨울 아침에
몸을 잔뜩 움츠린채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는 부엌에 들어가
더운 물 한바가지 얻어 마당으로 나와 대야에 부어놓고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얼른 고양이 세수를 하고는
어깨를 움츠리며 부리나케 집안으로 들어와야 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며,
샤워는 꿈도 꾸지 못하고,
목욕은 일 년에 몇 번 목욕탕에 가는 걸로 만족해야 했던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나 느낄 수 있는 거겠지.
예전엔 지금보다 훨씬 더 추웠었단다.
겨울철 최저 기온이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도 자주 있었어.
그래서 한강 물이 깡깡 얼 때도 많았지.
세수한 물을 마당에 버리면 곧 얼음판이 되곤 했어.
방문 손잡이는 잡을 때마다 손에 쩍쩍 달라붙고 말이야.
지금처럼 집이나 건물이 좋으면 그나마 다행이지.
그땐 집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단다.
벽이 얇아 단열이 잘 안되는 건 기본이고
문이나 창문에 틈이 많아서,
찬바람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기까지 했어.
그래서 방안에 있어도 입김이 나올 때가 많았지.
옷이나 좋았음 또 몰랐겠지.
하지만 옷 사정도 형편없었어.
물자가 부족하여 옷이 많이 모자랐던 데다가
옷감 자체의 질도 좋지 않아서
한파를 막기엔 여러 가지로 역부족이었어.
그때는
지금과 같은 유행이나 패션 같은 개념은
아예 상상도 하기 힘들었고,
그저 옷이나 많았음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지.
너흰 아마 상상도 하기 힘들 거야.
뭐?
그걸 왜 상상해야 하냐고?
하하, 그래 맞다.
그 말이 맞아.
너흰 알 필요가 없지.
그런 거 알아서 뭐해 그치?
내가 괜히 쓸데없는 소릴 한 거야.
조금 전에 내가 한 말은 다 잊어버려.
구질구질한 얘기는 없던 걸로 하고
너흰 그냥
지금처럼 밝게 살렴.
그럼 돼.
암, 그럼 되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