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무뚝뚝하다는 지적에 대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무뚝뚝해서 문제라는 지적이 한동안 유행했었다.
그 당시,
그런 내용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매스컴에 꽤 많이 등장했다.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과 외국인들(주로 미국인)의 표정을 비교하며 설명하였는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우리가 문제 있으니 고쳐야 된다는 거였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처음 마주치는 사람에게도 미소 짓는데,
우리는 무뚝뚝하다 못해 마치 화난 사람들처럼 표정을 짓고 있으니 좋을 게 뭐가 있냐는 식이다.
한동안은 미소 짓기를 생활화 하자고 캠페인을 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계속 문제제기를 했고,
미소 띤 얼굴을 상징하는 뱃지도 유행을 했었다.
그 당시에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데,
내가 봐도 진짜 전형적인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ㅎ
일부러 미소띤 얼굴을 해보기도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기만 했다. ㅎ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주위의 사람들 표정을 살펴보니, 모두 무뚝뚝한 표정일색 이었다.
조금 심하게 표현해서 화난 것 같은 표정도 꽤 있었다.
방송에서 얘기하는대로,
외국인이 보면 이상하다고 느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괜히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회사일로 미국에서 일정기간 거주를 한 적이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미국인들은 마주칠 때마다 미소 띤 얼굴을 해주었다.
길을 걷다가 그냥 서로 지나치는 와중에 잠깐 눈이 마주쳐도 변함없이 미소를 보내주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처음엔 나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인가? 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단순히 마주칠 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대화를 할 때도 그들은 아주 상냥하고 친절했다.
미소 띤 얼굴은 기본이고 매우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듣는 거였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참 친절하고 상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점은 본받을 만 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목격한 장면부터 환상은 깨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어느 두 사람이 매우 상냥한 미소를 나누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잠시 후에 서로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순간 둘 다 아주 냉정한 얼굴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엥?
놀라웠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얼굴 표정이 어찌 그리 상반되게 변할 수 있는지....
나에겐 일종의 충격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흉내 내려고 해도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을 거 같았다.
한번 미소 지으면 어느 정도 그 여운이 남는 법인데,
어떻게 순간적으로 저리 변할 수 있나.... 참으로 기이했다.
그 다음부터
틈나는 대로 사람들이 서로 얼굴 마주치는 광경을 유심히 살펴보니
거의 대부분이 그렇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깐 미소 짓고는 이내 무표정이거나 화난 사람의 얼굴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런 것들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제서야 그동안 내가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내 얘기를 상냥한 표정으로 경청하는 거 같던 그들의 행동 또한,
철저히 계산된 것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조금도 양보가 없고 철두철미했다.
몇 번을 만나는 동안 친해진 거 같아도 마찬가지였다.
친해졌다는 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그들의 표정이나 말투에 현혹되어,
어느 정도 인정도 통할 거라고 생각하고 먼저 양보하기도 했던, 나는 너무나도 순진했던 것이다.
미국 가기 전에,
그곳엔 인종 차별이 있고,
미국 사람들이 겉으로는 친절해도 실제로는 몰인정하거나,
심지어는 잔인한 면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따위의 말을 듣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었다.
인종이 다른 사람끼리 만났을 때도 그들은 늘 미소를 머금고 상냥한 태도로 대하고 있었으며
계속 그런 장면들만 보였으니까.
그런데 좀 더 시간이 지난 다음부터는 그 말에 수긍이 가시 시작했다.
처음에는 볼 수 없었던 그들의 진면목이 조금씩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속으로 싫어도 겉으로는 미소 짓는다.
속으로는 못마땅하다고 생각하거나 비웃어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상냥하게 말한다.
습관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마음속에 인종차별 의식이 심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음성적인 인종차별이 아주 심했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구밀복검 (口蜜腹劍)의 양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내가 보거나 만난 사람들은 극히 일부분이기 때문에,
그들을 기준으로 미국인들 전체를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자칫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미국인들을
특히 백인들을 바라보는 눈이 과거의 인식에서 많이 변한 것만은 확실하다.
어렸을 때부터 미국이란 나라는 동경의 대상이었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지만, 그땐 그랬었다.
그들의 것은 거의 다 좋고 옳은 것이었다.
본받을 거 천지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웃음 밖에 나오지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겉으로 웃으면서 접근하는 사람을 그 다음부터는 다시 경계하게 되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