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사이

딸이 있으면 좋겠다

밝은 창 2012. 5. 19. 21:24

 

 

나는 딸이 없다.

그래서 딸 없는 설움이 깊다.

 

길을 가다가 귀여운 여자애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참을 지켜보곤 한다.

그때의 내 얼굴엔 언제나 미소가 가득하다.

 

가끔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딸이 갑자기 나타나는 비현실적인 상상을 하기도 한다.

눈감고 누워서 상상의 나래에 빠지는 거다.

 

그래서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해주는 녀석

내가 귀엽다고 끌어안고 얼굴 부비면, '아빠 변태야' 라고 하면서 얼굴 찡그리며 도망가는 그런 녀석.

그래도 조금 있다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미소 지으며 달려드는 그런 녀석.

수시로 다가와서 종알종알 얘기를 해주는 녀석.

지가 원하는 게 있으면 목에 매달리며 콧소리 섞어 '아빠앙' 하면서 나를 녹이는 녀석.

뾰로통해 있어도 귀엽게 보이는 녀석.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저 예쁘게만 보이는 녀석.

공부를 잘해도 예쁘고, 못해도 괜찮은 녀석.

어쩌다 아프기라도 하면 내 살이 떨려 어쩔 줄 모르게 만드는 녀석.

갑자기 아프다고 해서 등에 업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갈 때, '아빠 천천히 가도 돼' 라고 얘기해주는 속 깊은 녀석

내가 조금 힘든 내색이면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위로해주는 녀석.

멀리 떨어져 있어도 모습을 떠올리면 저절로 미소 지어지는 녀석.

일이 힘들거나 기분이 안 좋아 처져있다가도 얼굴만 떠올리면 기분 풀리는 녀석.

그리하여 존재 자체가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녀석.

그런 딸을 상상한다. ㅎ

 

그리곤 상상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빙긋이 미소 짓는다.

 

어떨 땐 마치 진짜 그런 딸이 있는 거 같은 착각에 빠질 때도 있다.

그래서 상상을 더 이어가기도 한다.

 

딸이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아빠하고 조금 멀어진다고 하는데,

그래도 나에겐 여전히 귀엽고 예쁜 녀석이겠지.

힘들게 사춘기 보내는 모습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겠지만,

내 딸이라면 별 탈 없이 넘기리라 믿어.

시집갈 때는 많이 힘들 거야.

그 예쁜 녀석을 시집보내고 어떻게 살지 자신이 없다.

시집보내고 나면

혼자 산에 올라 아무도 없는 곳에서 끅끅대며 울 거야 아마.

이런 식이다. ㅎ

 

내가 부러운 친구는 딸이 있는 친구다.

돈이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친구는 별로 부럽지 않다.

돈은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을 정도면 된다고 생각하고,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스트레스 또한 그만큼 많아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딸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친구가 딸 자랑을 할 때는 부러움의 눈길을 팍팍 보낸다.

 

만약 나에게 딸이 있다면,

나는 아마 가장 심한 딸 바보가 되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