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여러 가지 분석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 거 같다.
첫째는 두뇌 기능이 떨어지거나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아이들과 어울리기 힘든 학생들이고,
둘째는 개인주의 성향에 고지식한 성격의 학생들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의 경우는 옛날에도 왕따를 당했던 부류다.
평범한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기 쉬운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왕따는 원인 파악이 쉬워서 대처하기가 용이하고, 문제가 크게 확대되는 경우가 드문 편이다.
요즘 문제가 되는 것은 두 번째의 경우이리라.
고지식하고 개인주의 성향을 가진 아이들 ...
그런 아이들은 개인주의 성향 때문에 남들과 같이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러다보니 어울리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아 점점 더 무리들에게서 멀어져 간다.
게다가 고지식하기까지 하니 설상가상인 셈.
또한 남들 앞에서 주눅들기도 잘한다.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피해의식이 있어서다.
그러다 보니 아이 몇 명이서 쉽게 보고 놀리거나 왕따시키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 아이는 더 주눅들어 기를 못 펴고 지낸다.
곧이어 나머지 아이들도 동참하게 된다.
어차피 자신들하고 어울리지 않으니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렇게 왕따를 당하는 아이가
겉으로는 멀쩡하기 때문에 알기가 쉽지 않고,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신체적인 가해나 정신적인 가해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는 한
함부로 가해학생을 처벌할 수도 없고, 피해학생을 보호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그러니 사건이 발생하면 그저 대증요법을 쓰고는 흐지부지 하고 만다.
당하는 아이 입장에서는 황당할 것이다.
한 번도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는데 왜 자기가 피해를 당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모두 한통속이 되어 자신을 손가락질 하니 속수무책이다.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도 없다.
부모나 선생님에게 얘기해봤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질 않고, 잘못하면 오히려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왕따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는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없다.
그냥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심지어는 학교에서 그냥 있을 수 있는 일 중의 하나로 인식하기도 ....
그래서 오래전부터 '왕따'라는 말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대충들 넘어간 거 아니겠나.
관계기관에서도 그렇고 언론에서도 그렇고, 심지어는 그 현장인 학교조차도 ...
일이 터져도 그저 적당히 넘어가기를 바라며 일처리를 해온 듯하고
원인을 분석해서 근본부터 막으려는 생각은 아예 없었던 거 같다.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자살자 속출이라는 극단적인 현상이 나타나고서야 비로소 난리법석을 떠는 모양새는 조금 우습다.
곪고 있을 때는 적당히 대처하다가
악화되어 곪아터지고 옆으로 번지는 불상사가 생기니
이제야 원인을 분석한다, 대안을 세운다, 계획을 세운다 하면서 시끄러우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아직도 근본적인 접근을 하는 거 같지 않다.
왕따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고찰부터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근본적인 대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왕따 당하는 아이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아야겠지만, 왕따를 시키는 아이들의 심리 파악도 중요하다.
그 아이들이 왜 왕따를 시킬까?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여러 가지 원인분석이 있겠지만,
내가 볼 때는 흐름에 동참하지 않고 따로 도는 것이 보기 싫어서 그러는 거 같다.
같이 생각하고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러질 않으니까 싫은 거다.
게다가 약한 상대이니 왕따 시키기도 쉽다.
이것은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우리의 기본 심리에서 출발했다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에 깊숙이 박혀있는 사고방식이 원인의 하나라는 얘기다.
교육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게끔 교육의 내용을 바꾸어야 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는 사고방식은 위험하다는 인식을 하게끔 교육해야 한다.
또 하나 있다.
왕따를 당하면 어떤 괴로움이 있는 지에 대해 모든 학생들이 번갈아 가며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필요 하다.
역할 연기나 입장 바꿔보기 등 좋은 방법을 찾으면 된다.
별도로 그런 시간을 책정해서 가해자의 입장이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왕따를 시키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그냥 장난으로 한 건데.....' 라든가 '별 거 아니었는데....' 라는 식의 반응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자신들은 별 다른 뜻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게 아니고, 장난으로 그런 건데 그 애가 과민하게 반응했다는 거다.
마치 연못 속 개구리에게 재미로 돌멩이 던지는 아이들의 얘기 같다.
개구리 입장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모르는 아이들 말이다.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게 하는 교육은 꼭 필요 하다.
왕따 문제가 있었던 학교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라, 전체 학생들에게 필요하다는 거다.
그런 교육을 받다보면 학생들의 인격수양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의 심정이 되어 본다는 것은 앞으로 사회 생활 할 때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대책을 살펴보면 많이 아쉽다.
뉴스 내용을 보면 폭력서클을 파악해서 별도 관리를 한다는 내용이 주된 사항인 거 같다.
그런데 그것은 근본적인 처방이 되지 못한다.
대증요법 중의 곁가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폭력적인 조직에 연루된 학생들이 일으키는 행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왕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그 아이들은 왕따 학생에게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왕따는 폭력서클의 학생만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저지르는 행위는 차라리 대처하기가 편하다.
눈에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 애들만 따로 관리한다고 해서 왕따가 없어지리라고 생각한다면 커다란 오산이다.
그것은 마치 짧은 치마 입은 사람만 따로 관리하면 여자 문제에 대한 대책을 다 세우는 것 이라는 식의 사고방식과 비슷하다.
대증요법을 쓰려면, 내가 전에 주장했던 내용이 더 좋을 거 같다.
학교(학급)에서는 조금만 신경 써서 살펴보면 왕따가 있는지 여부와 누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알 수 있으니,
그들을 파악해서 관리해야 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작년 말경에 이미 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폭력서클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순수하게 왕따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다.
학급 내에서 왕따가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가해와 피해의 주체는 누군지 등에 대한 파악이 필수라는 거였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단기적인 대책으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급한 불을 끄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대증요법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반드시 근원적인 대책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조금 전에 얘기한 다양성을 인정하게끔 하는 교육을 포함해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때그때 대증요법만 쓰고 넘어가는 무사안일주의 사고방식은 이제 버려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