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상승의 폐해 - 보험의 예
물가 얘기를 하다보면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보험 얘기다.
물가상승 때문에 보험회사와 보험 가입자 사이에 벌어졌던 희비쌍곡선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보험은 알다시피 여러 사람들이 만약의 사태에 공동으로 대비하는 제도.
즉 위험에 대한 보장을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하는 방책이다.
그래서 나온 표어가 '만인은 일인을 위해서, 일인은 만인을 위해서' 아닌가.
보험은 여러 가지가 있고 분류방법도 여러 가지겠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형태를 기준으로 보면 크게 생명보험과 화재보험으로 나눌 수 있겠다.
보장의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나뉘는 것이니까 생명보험은 사람위주, 화재보험은 재화위주라고 보면 되겠지.
이중에서 오늘의 이야기 대상은 생명보험이다.
생명보험의 종류를 크게 보장성 보험과 저축성 보험으로 나누기도 한다.
보장성 보험은 글자 그대로 보장을 주목적으로 하는 보험이기 때문에 보험의 본래 성격과 맞다.
그런데 저축성 보험이라는 것은 원래 보험의 성격과는 조금 다르다고 봐야 한다.
저축 기능에 보험 기능을 살짝 결합시킨 상품이다.
사람들이 '저축'을 좋아하니까 그걸 앞에다 내세우고,
보험 기능은 뒤쪽에 숨긴 일종의 '꼼수'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보험의 성격에 가장 걸 맞는 것은 순수 보장성 보험이다.
사망이나 질병 또는 사고 등의 위험에 대한 보장만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생명보험회사는 이런 상품만 취급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된 거 같은데, 과거엔 우리나라의 보험회사 모두 정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랜 세월동안 저축성 보험에 대부분의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해되는 측면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 '보험'이라는 것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부족했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보험이 뭔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험 상품을 제대로 이해시켜가며 가입하게 한다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꼼수를 썼다고 봐야 한다.
당국에서도 그런 사정을 적당히 봐준 면도 있고....
하지만 그렇다해도 합당한 변명이 될 순 없다.
사람들이 이해을 하지 못할 수록, 더 이해시키면서 정도를 걸었어야 했는데,
오히려 그런 애로사항들을 기회로 삼아서, 반대의 길을 걸으며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특히 70~90년대에 보험회사는 장기 저축성 보험의 모집에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회사에 들어오는 돈(보험료)이 보장성 보험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저축성보험은 저축을 주목적으로 하더라도, 보험이라는 이름 때문에, 일반 금융기관의 저축하고 달리 보장 기능을 첨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보험회사에 내는 보험료에는 저축과 관계없이 보장용으로 사용되는 돈이 있게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회사의 운영자금도 일부 떼게 되어있다.
모르는 사람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다시 설명해보자면, 가입자가 저축성 보험에 가입하고 보험회사에 내는 보험료를 보험회사에서는 3부분으로 나눈다.
즉 저축 보험료, 보장(위험) 보험료, 그리고 부가 보험료 이렇게 나누는 것이다.
저축 보험료는 만기에 이자를 붙여서 지불할 목적으로 적립을 하는 용도고, 보장 보험료는 사망이나 질병 또는 부상 등 가입 조건에 따른 보상을 하기 위해 따로 떼어 놓는 거고, 부가 보험료는 판매사원의 수당과 회사의 운영자금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자면 10만원의 보험료를 보험회사에 납부한다고 했을 때, 8만 5천원이 저축 보험료고, 1만원이 보장 보험료고, 5천원이 부가 보험료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만기가 되었을 때 가입자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8만 5천원만 해당된다는 얘기다.
물론 8만 5천원을 적립해서 발생하는 이자도 포함되겠지.
일반 금융기관에 저축하면 10만원 전체를 적립하여 이자와 같이 지급하지 않는가.
그러니 보장 부분을 생각하지 않고 수익률만 따지는 가입자라면 손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가입자들은 이런 내용을 알지 못했다.
보험회사에서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과장해서 뻥튀기 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다른 금융기관과 달리 중도에 해지하면 손해가 크지 않은가.
그 당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축'에만 신경을 썼다.
그러니 보통의 방법으로는 보험 모집이 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보험회사에서는 일선 영업조직을 육성하여 직접 찾아가는 영업에 주력했다.
금융기관과의 단순 비교를 하면 불리하니까, 능란한 화술로 그 약점을 보완했다.
그리고 판매사원들을 대량으로 증원하여 그 사람들의 인맥을 통한 판매에 주력했다.
친척이나 아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우리의 인정 문화를 십분 활용한 것이다.
보험회사에서 장기 저축성 보험에 주력을 한 이유는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회사에 들어오는 돈, 즉 보험료 수입이 많기 때문이다.
들어오는 돈이 많아야 좋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대출을 해주어서 이자 소득을 취할 수도 있고 투자를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그 당시에 물가의 상승 폭이 매우 컸다는 거다.
그리고 부동산 가격의 수직 상승이다.
물가가 올라간다는 것은 돈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진다는 뜻.
즉 돈의 가치가 자꾸 떨어지니 보험회사는 가만히 앉아서 그 차액을 향유할 수 있었다.
부동산 등의 실물 자산에 투자해놓으면 부동산 가격의 폭등으로 자산 가치는 엄청나게 상승하는데,
보험료를 낸 가입자에게는 약정된 이자만 지급하면 된다.
실제로 보험회사들은 그렇게 해서 엄청나게 자산을 불렸다.
일반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과거에 보험회사들은 보험료를 안전하게 투자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회사로 들어오는 돈의 대부분을 부동산 매입에 투입했다.
그래서 전국의 요지에 보험회사 소유 부동산은 늘어만 갔다.
그동안 땅값과 건물 값이 수십 배에서 수백 배까지 뛴 것은 다 아는 사실.
그들은 가만히 앉아서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
반대로 가입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그만큼 손해를 본 셈이다.
가입 시점의 돈 가치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나중에 받을 때는 푼돈이 되어 버린 경우가 매우 흔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저축성 보험의 종류가 많지만, 그 중의 하나인 교육보험에 대해 알아보자.
70년 대 초에 교육보험 가입을 권유할 때, 보험회사에서는 100만 원짜리 교육보험에 가입하면 자녀의 대학 교육까지 해결된다고 하였다.
그 설명을 들은 가입자들은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의 화폐가치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인적인 물가상승 때문에, 자녀가 대학에 갈 때 즈음엔 그야말로 푼돈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받는 돈이 대학교육은 그만두고 입학금도 되지 못했던 것이다.
80년대 들어서자 보험회사에서는 1000만 원짜리 교육보험을 팔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역시 그거 하나면 자녀의 대학교육까지 다 해결된다고 꼬드겼다.
70년대의 경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지, 10배로 대폭 올려서 이번에는 물가가 상승을 해도 자신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런데 그 돈 역시 결국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그전과 마찬가지로 입학금 해결조차 벅찬 꼴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물가상승의 폭은 가팔랐다.
알다시피 교육보험은 아이의 초등학교 이전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지속되는 장기 보험이다.
그 사이에 물가가 상승하는 만큼 돈의 가치는 자꾸 떨어지게 되어 있다.
특히나 과거에는 그 폭이 무척 컸다.
그뿐 아니라 부동산 가격의 폭등까지 겹쳤다.
그래서 보험회사에서는 엄청난 이득을 보았다.
전국의 노른자위 땅이나 건물 등 부동산을 사놓았던 보험회사의 자산은 그 가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으뜸이다.
교육에 대한 투자만큼은 아끼지 않으려고 한다.
보험회사는 그것을 최대한 이용했다.
교육보험을 가입하지 않으면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처럼 분위기를 몰고 갔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교육보험을 들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로 대 성황을 이루었고, 덕분에 우리나라의 보험회사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급성장을 했다.
보험회사가 그렇게 이득을 보고 엄청난 성장을 할 때, 수많은 가입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봤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오랜 시간 힘들여 준비한 것이 대부분 헛수고가 되었다.
쉽게 얘기해서 소를 살 수 있는 돈을 계획하고 저축했는데, 기껏해야 병아리 한 마리밖에 사지 못하는 꼴이 된 것이다.
전국의 보험 가입자들이 그렇게 손해를 본 부분들은 보험회사에서 독차지 했다고 얘기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높은 물가상승은 이렇게 부작용이 크다.
그리고 물가상승은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촉발한다.
뿐만 아니라 부동산 가격의 상승 또한 물가의 상승을 촉발한다.
물고 물리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셈이다.
그리하여 부동산 부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집 없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살고 있는 집 이외에 부동산이 없는 보통 사람들도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