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단풍
밝은 창
2011. 11. 4. 13:25
단풍
은산
그거 아니?
사람들이 땅을 다투듯
나무들은 하늘을 다툰다는 거.
숲속에 하늘이 없는 것은,
나무들이 다 차지했기 때문이야.
여름 내내 나무들은
하늘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아주 치열하게 다투거든.
그런데 그거 아니?
사람들은 일 년 내내 다투는데,
나무들은 일 년에 딱 절반만 그래.
나머지 절반은 휴전 이래 글쎄.
재미있지 않니?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면,
그네들은 어김없이 휴전을 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뿐 아니야.
휴전이 시작되면,
서로 얼굴 붉히며 부끄러워해.
여름 내내 심하게 다툰 것을.
그때의 그 모습은 참 예뻐.
짓궂은 총각의 놀림에
빠알갛게 변한 아가씨 얼굴 알지?
바로 그거야.
나무가 아름다운 건,
부끄러움을 간직했기 때문인 거 같아.
하늘도 보기에 좋은가 봐.
서로 자기를 차지하려고 다투지 않으니까
아주 밝은 얼굴이야.
그래서 인심이 좋아져.
여름 내내 잘 드러내지 않았던 맨 얼굴
파아란 살결이 너무나 아름다운 그 얼굴을
아낌없이 막 보여줘.
그러면 또 그것을 본 나무가 어쩔 줄 몰라 해.
더 새빨개져.
나중엔 온 몸을 붉게 물들이고 말아.
바람이 차가워지면 산에 가봐.
맑고 파아란 하늘 아래
부끄러움에 온 몸을 붉힌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 모습을 마음껏 볼 수 있을 거야.
아참, 그거 아니?
그 모습 보기에는 이때쯤이 딱 이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