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풍습을 사랑하자.
저녁 무렵에 한 무리의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모여서 제법 시끌시끌하다.
무슨 일인가? 하고 보니 할로윈 데이 복장들을 하고 있다.
서양의 풍습인 그것이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는 기사를 보긴 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약 12년 전에 미국에서 우리 교포들이 할로윈 데이 행사를 하는 걸 보고 의아해 했었는데,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같은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아일랜드 이민들에 의해서 퍼진 할로윈 데이는, 옛날에 자신들의 조상인 켈트족들이 새해의 시작을 11월 1일로 하고 그 전날에 했던 풍습이었다고 한다.
귀신들을 놀리거나 귀신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기괴한 복장을 하고 호박을 귀신 모양으로 파서 그 속에 촛불을 켜 놓는다.
그리고 새해에 대한 점을 치는 등 송구영신의 의미가 있었다는 거다.
아이들이 무서운 복장을 하고 집집마다 몰려다니며 사탕이나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 즐거운 놀이도 있는데, 지금은 그것이 더 부각된 듯하다.
그런데 이 내용을 들어보면 우리나라의 풍습 몇 개가 한꺼번에 떠오른다.
첫째, 동지 날에 팥죽을 쑤어서 나누어 먹으며 귀신이 못 오게 하고 액운을 막았던 풍습.
둘째, 섣달 그믐날 저녁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하며 모두 같이 송구영신하던 풍습.
셋째, 정월 대보름날 청소년들이 집집마다 몰려다니며 오곡밥과 나물 등 먹을거리를 얻어서 같이 나누어 먹던 풍습이다.
할로윈 데이는 우리의 이 세 가지 풍습이 모여 있는 셈이라고나 할까?
가끔 느끼는 것이지만, 인류의 풍습은 서로 닮은 점이 많은 거 같다.
겉모습만 보지 말고 속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꽤 많다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살아온 지역이 완전히 다르고, 역사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인종까지 다른데도, 지켜 내려온 풍습이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은 참 재미있다.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이 할로윈 복장을 하고 몰려다니는 걸 보는 기분은 좀 복잡하다.
서양의 풍습이니 무조건 배척해야한다고 하기도 그렇고, 우리 것부터 지키자고 주장하기도 좀 그렇다.
그렇게 하기에는 그동안 우리의 풍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노력이 너무 부족했다는 느낌이다.
그런 노력도 하지 않고 무조건 지키라고 하거나, 남의 것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그리고 축제의 하나로 알고 즐기는 어린아이들에게 찬물을 끼얹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발렌타인 데이도 초창기에는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았지만, 이제는 하나의 행사로 굳어진 느낌 아닌가.
그렇지만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남의 것을 받아들여서 즐기는 것도 좋지만, 우리 것도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나이 많은 기성세대를 제외하면 젊은 세대 중에서 우리의 전래 풍습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아마 매우 적을 것이다.
아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
그래서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거다.
우리 것을 알고 지켜나가는 한편으로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괜찮지만, 우리 것은 사장된 채 남의 것을 지켜나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역사가 미천하다거나, 이렇다 할 문화가 없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우리 조상들의 풍습 중에서 현대에 맞게 계승 발전시킬만한 것은 많다고 본다.
전문가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다음에 끈기를 가지고 청소년 세대에 접목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청소년부터 사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첫술에 배부를 수야 없겠지만, 그런 노력이 해를 거듭하다보면 분명히 자리를 잡게 되어 있다.
과거에 멸시를 받던 김치가 이젠 세계적인 음식 대열에 끼인 것을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그동안 사랑하고 계승 발전시켰기 때문 아니겠는가.
물론 국력의 신장과 더불어 우리의 것이 부각된 것도 무시할 수 없겠지.
그리고 관계되는 사람들의 노력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우리 모두가 계속해서 사랑했다는 거다.
이제는 우리의 풍습도 사랑하자.
그리고 계승 발전시키자.
그래서 나중에 우리의 풍습도 세계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약에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전문가들이 모여서 작업을 시작한다면 그들 옆에서 자원봉사라도 하고 싶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